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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서 못 파는 HBM·백악관 대변인도 인증한 마스크팩…”이 정도 되니 세계 1등”

솔직히 말하면, 이 기사 쓰기 전에 좀 망설였다. ‘세계 1등’이라는 표현이 너무 자랑스러운 냄새를 풍겨서다. 그런데 숫자를 들여다보면 망설임이 사라진다. HBM(고대역폭메모리)은 지금 말 그대로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 됐다. AI 가속기와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공급이 수요를 좇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수 분기째 이어지고 있고, 그 구조의 꼭대기에 한국 기업들이 앉아 있다.

더 넓게 보면—그리고 이 부분은 좀 무섭다—한국 경제가 외화를 버는 통로가 얼마나 좁은지가 수치로 확인된다. 2025년 9월 기준 서비스수지 적자는 34억 8천만 달러. 관광, 교육, 금융, 문화 콘텐츠 등 서비스 영역에서 달러를 버는 능력이 여전히 취약하다. 상품 수출, 그중에서도 반도체에 외화 흑자가 집중되는 구조가 반복되는 거다. HBM이 잘 팔리면 괜찮고, HBM이 흔들리면 전체가 흔들린다. 이 의존도를 분산시키는 문제는 HBM 수출 호황 한복판에서도 아무도 크게 떠들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이게 핵심인데, HBM은 단순한 메모리 칩이 아니다. 수십 개의 D램 다이를 수직으로 쌓아 초고속 데이터 통로를 만드는 적층 패키징 기술이 핵심이고, 이 공정 하나를 완성하는 데 수년의 설계 축적이 필요하다. 대만 TSMC가 파운드리에서 독보적이듯, HBM 적층 기술에서는 한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차이가 있다면 TSMC는 추격자가 투자만으로 좁힐 수 있는 간격이라도 있지만, HBM은 설계·패키징·열관리 노하우가 뒤엉킨 복합 기술이라 돈만 부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마치 오랫동안 불 조절을 반복하며 완성한 장인의 도자기 가마 같아서, 설계도를 통째로 넘겨줘도 같은 결과물이 나오질 않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시장에서 사실상 양강 체제를 형성 중이다. 차세대 HBM3E와 HBM4 양산 경쟁이 본격화됐고,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가 줄어들 기미가 없는 이상 수요 곡선이 꺾일 가능성은 당분간 낮다. 환율까지 등을 밀어주고 있다. 2026년 3월 17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91원인데, 달러로 결제되는 반도체 수출 매출이 원화로 환산될 때 자동으로 불어난다—기업 입장에서는 앉아서 외형이 커지는 구조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짚자면, SK하이닉스의 HBM 매출 비중은 2023년 전체 D램의 약 10%대에서 2025년 들어 30%를 넘긴 것으로 추정되고, 2026년에는 40%에 근접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3년 만에 사업 포트폴리오의 무게중심 자체가 이동한 셈이다.

근데 좋은 소식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2026년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8.4를 기록했다. 2025년 12월의 117.6에서 두 달 만에 0.7포인트 이상 올랐다는 건, 원가 측의 비용 압박이 조용히 쌓이고 있다는 신호다. 환율이 수출 매출을 키우는 동시에 수입 원자재 비용도 함께 끌어올린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반도체 업계라고 이 흐름에서 완전히 비켜갈 수 있는 건 아닌데, IMF가 경고한 물가 장기화 시나리오가 물가 연쇄폭탄 터지나…IMF “1년6개월 동안 오를 수도”에서 다뤄진 바 있다.)

물론 백악관 대변인이 한국 마스크팩을 언급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고, K-뷰티가 실질적인 수출 다변화의 작은 씨앗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런데 씨앗은 씨앗이고 수확은 수확이란 말이다. 지금 당장 무역수지 방어선을 지키는 건 HBM이고, 삼성전자의 공급 확대 속도가 향후 한국 수출 성적표의 향방을 가장 직접적으로 결정할 거다. 다만 한 가지 긍정적인 건, K-뷰티 수출액이 2023년부터 연평균 20% 넘게 성장하면서 화장품이 반도체·자동차에 이어 3대 수출 품목으로 올라섰다는 사실이다. 아직 반도체와 규모를 비교하긴 어렵지만, 서비스수지 적자를 메울 후보군이 실적으로 증명되기 시작했다는 건 무시할 일이 아니다.

결국 ‘없어서 못 파는’ 상품이 생겼다는 건, 한국 제조업이 아직 기술 우위를 지키고 있다는 증거다. 그 우위가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지만—HBM4 이후의 세대 전쟁에서 누가 먼저 양산 라인을 안정화하느냐가 답의 절반쯤 될 것이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Punchline: 세계 1등 반도체를 만드는 나라가 서비스수지는 꼴찌급이라는 사실—이걸 아이러니라고 부르기엔 너무 오래된 농담이다.

태그: HBM, 반도체 수출, 삼성전자, 원달러 환율, 한국 무역수지